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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댄서와 개발 등가교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등가교환이다. 어느 날 애니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고 등가교환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은 나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처음으로 그 영향을 실감했던 때는, 좋은 회사에 다니고 싶어 개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알바를 해야 할 상황에 부딪혔을 때였다. 알바를 하기도 싫고, 아무 회사나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한 선배에게 투정을 부리자, 선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걸 다 할 수 없어.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해." 그 말이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왜 몰랐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타협점을 찾기 위해 4시간은 알바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발 공부를 했다. 덕분에 돌고 돌아 결국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대의 절반 이상을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좋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 개발을 우선으로 선택하며 살았다.
대학생 때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철없이 만나자고 조르는 애인을 차버리기도 했다. 똑똑하지 않은 머리로 개발 공부를 하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지만 그럭저럭 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그런 내가 개발을 잠시 접어두려 한다.
나는 최근 희망퇴직을 했고, 회사를 다니는 마지막 한 달과 퇴사 후 한 달을 토이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내가 낸 아이디어로 첫 배포까지 마쳤으니 그 프로젝트는 정말 자식과 같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12월까지 프로젝트를 이어갈까? 고민했지만, 결국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훌라에 더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에 대기업을 포기하고 훌라를 한다니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나에게 훌라는 특별한 존재였다. 훌라를 하면서 정말 많은 책을 읽었고, 그 중에서도 제이 셰티의 책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책은 내 마음의 소리를 잘 듣고 그 소리를 따라보라고 조언했다.
나는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쓰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전부 적어 내려갔다. 때로는 생각하는 속도를 적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혼란스럽고 답답했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차근차근 나만의 길을 만들어갔다. 막막할 때는 모아나 쿠무 스승님에게 길을 물어보기도 했다.
이제 회사 없이 산 지 한 달이 되었다. 온전히 내 힘으로 조금씩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개발자로서 수많은 시간을 쏟았던 내가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 가끔은 낯설고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설렘이 더 크다. 마치 개발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느꼈던 열정처럼 지금 나는 훌라를 통해 새로운 나를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등가교환이 두렵지 않다.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선택하며 나아가고 싶다. 더 이상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삶을 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훌라가 나와 함께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욱 뜨거워진다.